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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 & 테크

엔지니어링 샘플은 '밀봉' 따야 제 맛!

by 테리™ 2008.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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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분야 일을 제법 오래하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싸고 비싸고는 그다지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물릴달까요? 시장에서 듣도 보도 못할 고가의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일'로 만나다보면 개념이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은행원들이 돈 보는 자세와 비슷해지는 거죠. '일'로 보게되면 아무리 진귀한 것도 돌덩어리 같아 보이는 게 '정상'입니다.

물론, '정상'이 아니게 되면 각종 사고를 일으키긴 합니다. 최근에도 문제 일으켜 업계에서 뒷담화 화제가 된 일이 있긴 합니다. 사람 욕심 중에서 '물욕' 처럼 티 나는게 몇 안되는 편인데, 아무래도 신제품 다루다보니 그런 쪽으로 사고 치는 양반들이 종종 나오죠. 모를 줄 알고 슬쩍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바닥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 그걸 모르더군요.


▲ 다양한 제품군에 '엔지니어링 샘플(ES)'가 존재

개인적으로 이 바닥(?)에 처음 발 들이밀었던 계기가 '서포터'라는 것 때문이었죠. 실제 시판되기 전, 팔리지 않는 제품을 두어달 먼저 받아서 써보고 좋은지 나쁜지 판가름해서 수입하지 말지 조언하고 그랬습니다. 이게 나중에 '바이럴'로 변질되긴 했습니다만, 원래 '서포터'는 수입 여부를 가늠하던 특수보직이었죠. 요즘 마케터들은 이런 사연 모를껍니다. 실제로도 모르죠. 그냥 댓글 알바질로 안다는.

그래도 '서포터'의 전통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 처럼 이 바닥에서 10여년 세월 죽치고 있었던 사람은 어찌되었든, 업계에서 신용도가 높아 그럭저럭 '대여' 걱정은 안하고 삽니다. 간혹 제 이름을 사칭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대개 제 귀에 누군지 정체가 들어오므로 봐서 가끔 봐서 일제정리를 해 버리고 있긴 합니다.

사족이긴 한데, 엄한 사람들 덕분에 웃기는 일 많습니다. 저 스스로도 각서도 쓰고, 민증도 복사하고 기타 등등... 한 일이 많죠. 일단 업체에서 흘러 지나가는 기자나 필자들한테 물건 빌려주는 거,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워낙 신용이 땅에 떨어진 세상이라, 뭐 빌려달라고 하면 도둑놈 보듯 하기에 신용도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엔지니어링 샘플(이하 ES) 등은 꿈도 꾸지 않는게 좋을 껍니다.


▲ 메인보드는 내용물을 상용제품과 비슷하게 맞춰주는 편.

실력을 떠나, 신용이나 인망이 어느정도 되면 그럭저럭 ES 구경은 하고 삽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신용, 인망, 성실, 근면 같은 군사정권 시절 새마을운동같은 테마가 있습니다. 그게 깔린 다음에 '실력'이 따져지죠. IT 호경기 시절, 인간의 도리를 져 버리고 제 멋대로 세상 산 사람들 덕분에 일단 '사람 노릇 못한다'라고 판정나면 그걸로 끝입니다. 뭐든 인성(人性)이 기본이죠.

신용이 되서 ES를 만지게 되면, 각서 정도는 기본으로 싸인합니다. 대여기간 엄수, 기획안의 컨펌 등등 따지게 이 때 생기지요. 일반적인 회사 다닌다고 친다면 서류작업이 중간에 끼는 겁니다. 한 5년여 전에는 이런 거 없긴 했는데, 그 동안에 물 흐린 사람들 꽤 있었던 덕분에 이런저런 난해한 절차가 좀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먹고 튀면 업계 퇴출이나 가압류 정도는 걸려주는 체계(?)가 잡혔죠.

간혹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지난 10여년 세월을 돌이켜 봤을 때 이런 체계가 잡힌 것은 나름대로 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실히 한국의 IT 매체들이 전문기자를 양성하기 보다는 인건비 싼 걸 돌려막기 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만들면서 도탄에 빠졌지요. 덕분에 옆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기자들보다 기량이 모자란다는 평판이 문제가 되는 판국이라 '자정'이 시급하긴 했습니다.


▲ 그래픽카드도 '각' 잡힌 엔지니어링 샘플이 존재하기는 한다.

남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저 스스로도 가장 무능해서 이 바닥에 가장 오래남았다고 자조하는 형편입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무슨 투자를 받아서 지금처럼 사이트 운영하는 거 아닙니다. '인망'이나 '평판'이 괜찮으면 중간이 아니라 그 걸 뛰어넘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 챙기면서 남 탓이나 하는 것들을 보면, 왜 그 분들이 저를 도와주는지에 대해 새삼 뼈저리게 느끼곤 합니다.

그런만큼 저 스스로도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예전에 이 분야 일은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등 엄청난 스펙을 자랑하는 기라성 같은 분들이 토대를 닦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보시기에 요즘 꼴이 어떠할지야 두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겠죠. 개인적으로도 그저 PC 업그레이드 할 때 덕 좀 보자는 심산이었던 게 사실이라, 지금 와서는 이 분들의 유산을 계승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버겁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되는 일이라 지난 2년여 동안 나름대로의 삽질을 거듭하긴 했습니다. 이제는 그럭저럭 후진양성도 하고, 지난 5년여 세월 동안 끊어졌던 명맥도 다시 되살리는 등 이런저런 소소한 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끔 하고 많은 일 중에서 왜 이런 뒷 치닥거리나 하며 내 인생을 흘려보내나 한심하게 여길 때도 있긴 합니다만,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면 받아들여야 겠지요.


▲ '익스트림 에디션'보다는 보기 쉬운(?) '퓨어 화이트 에디션'

그럭저럭 '숙명'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남들과는 약간 다른 입장이 되긴 합니다. 웃긴 얘기지만, 밀봉 따는 재미가 쏠쏠하죠. 포지션이 안되면 여기저기 다 돌다가 걸레가 다 된 물건을 받아들 게 됩니다. 다 그런 경험을 통해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을 하다보면 지금의 저 처럼 미디어 종사자이면서도 밀봉을 따는 경지에 오르긴 합니다. 시간이 '약'인 것이겠지요.

문제는 이 경우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라는 게 있긴 합니다. 대여 기간 준수, 재고 관리 철저, 반납 필수 등등이 말이죠. 이거 우습게 아는 사람이 은근히 많은데, 회사 안 다녀본 사람 아니라면 '서류작업'의 무서움을 인지는 해둬야 할 것입니다. 기사 써주는 게 무슨 벼슬이 아닐진데, 이 부분에서 착각해서 물 흐리는 사람 많이 보거든요. 비영리로 하는 일은 '의무'와 '책임'만 있는 법입니다. '권리' 따위는 없죠.

기사를 쓰는 입장에서, 쓰는 사람 스스로의 주관이 있긴 있어야 합니다. '확신범 기질'이라고 할까요? 적어도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부하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오타 같은 건 빨리빨리 인정하고 고치는 자세도 '겸양'의 일종으로 있어야겠고요. 기사를 무슨 업체에 서비스하는 게 아니라면 '독자'를 위한 정보공유의 일환입니다. 그런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무슨 벼슬인지 알면 대책 없죠.


▲ '퓨어 화이트 에디션(?)'은 밀봉을 따야 제 맛!

사설이 길었습니다. 이게 컬럼이 아니라 방담인 것은, 추석연휴 첫 날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몸에 좋은 고기(...)를 많이 먹고 나니 기분이 동하여 이런 저런 사담을 끄적인 때문입니다. 내용 보면 '미디어오늘'에나 나올법한 그런 얘기이긴 하나, 이제 다른 사람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기도 싫은 처지라서 그냥 사담 같이 써 봤습니다.

결론이랄까요. 'ES'는 책임질 줄 아는 사람만이 만져야 한다. 이겁니다. 리서치는 고사하고 BMT도 못 하면서 왜 빌려가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워낙 남의 입에서 단내 나게 민폐 끼치는 사람들한테 파편 맞아본 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다보니, 저 스스로도 이제 '짜증'이 한계에 다달았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도 이제는 하는 짓 보고 판단해야겠다는 것이 지론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지사'적인 풍모에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일단 스스로 사는 게 고단해지죠.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기사를 무슨 '레퍼런스'급으로 만든다고 작정하고 접근한다는 게 세상 어렵게 사는 지름길입니다. 지난 2년여 동안, 창업자 스스로 본을 보이기 위해 해왔던 일들이 이런 배경에서 한 일이긴 합니다. 저 스스로는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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