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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슈머 리뷰/IT, 디지털 리뷰

파워 캐패시터 몇 개에 '울고 또 웃고'

by 테리™ 2008.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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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봉석


요즘 세상에 PC와 인터넷이 없으면 편리한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필자의 경우에는 얼마 전 장만한 데스크탑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으면 정말로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중요하고, 그만큼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런 필자가 지옥과 천국을 오가게 만들었던 사건을 이 자리를 빌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10월 28일 밤 11시. 원고 작업을 하다가 잠시 한숨 돌릴 요량으로 얼마 전에 구입한 DVD를 재생했는데… 한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재생이 중단되면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리셋(Reset) 버튼을 눌러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혹시 CPU나 그래픽 카드가 과열이 되었나 싶어서 10분 지난 뒤에 다시 전원을 넣어 봤지만, 이번에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전원 LED는 들어오고 팬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는데, 바이오스(BIOS)가 수행하는 자체 점검 과정이 시작되면서 나는 ‘삑’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대로 감감 무소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진도가 안 나가는 원고 탓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지라, “이거 참 대략 난감한데(자체검열)” 라고 생각하며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일단 최근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실제로는 ‘무죄’) 그래픽카드부터 떼어내고 다시 전원을 넣어 보았다. 하지만 마찬가지. 그렇다면 메모리가 문제인가 싶어서 메모리를 하나씩 떼어내면서 전원을 넣어 보았다. 변화 없음. 혹시나 HDD가 말썽인가 싶어서 전원 커넥터를 분리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끝내는 CMOS를 리셋해봤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

사태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원인은 딱 한 가지였다. 전원은 들어오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메인보드가 불량인 것 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이번 달 지출이 많은데 또 생돈이 나가게 생겼군...” 하며 한탄을 하고 있자니,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한번 정리를 해 봤다.

사 온지 두 달이 채 안 된 메인보드가 이제와서 갑자기 사망했다? 이 가설은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만약 메인보드가 불량이었다면, 이 곳으로 들고 오기 전에 이미 징조를 보였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갑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보기에는 좀 이상했다.

메모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과도한 오버클럭으로 피로가 누적되었다면 돌연사라고 해도 이해가 가겠지만, 필자는 오버클럭하고는 그다지 안 친하다. 그렇다면 그래픽 카드가 범인일까? 이것도 정답은 아닌 듯 싶었다. 내장 그래픽만 남겨 놔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래서 결국, 전원공급장치를 분리해서 뜯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전원공급장치 안의 캐패시터(Capacitor)가 세 개나 부풀어 있었다. 그 중 두 개는 이미 터져버렸고, 하나는 오늘 내일 하는 상태였다.


▲ 빨간 박스 안의 캐패시터가 부풀어 있다.

일명 ‘콘덴서(Condenser)’ 라고 부르기도 하는 캐패시터는, 일정 용량의 전류를 담았다가 흘려보내서 안정적인 전류 공급을 돕는 전자 부품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캐패시터는 열에 약한 나머지, 일정 온도 이상으로 오랜 시간 동작하다 보면 안의 내용물이 부풀어 오르다 결국 터져 버린다.

이 경우 캐패시터는 제 구실을 못 하므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증상들을 일으키곤 한다. 특히나 메인보드의 캐패시터가 터져 나가면, 강제로 재부팅을 당하거나, 부팅 속도가 느려지는 괴이한 일을 겪게 된다. 더구나 이 증상이라는 것이 항상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안심할만 하면 나타난다. 때문에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원인을 찾기도 어렵다.

때문에 어느 정도 몸값이 나가는(?) 메인보드나 그래픽 카드에는 좋은 캐패시터를 골라서 쓴다. 요즘에는 열에 강한 캔 타입 캐패시터를 많이 사용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품질이 좋은 일본산 캐패시터를 쓰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고급 캐패시터라 해도 불량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수명도 있는 법이라 가끔씩 터져 나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게다가 캔 타입 캐패시터는 위가 아닌 아래쪽으로 터져 나가므로, 오히려 사고 사실(?)을 확인하기가 더 어렵다.

일부 양심없는 제조사들은 저질 캐패시터에 금속 뚜껑만 씌워서 캔 타입 캐패시터입네 하고 눈속임을 하니, 캔 타입 캐패시터라고 무조건 맹신할 일은 아니다. 예전에 어느 회사가 이런 만행 아닌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난 일인데다 이와중에 여러가지 문제가 꼬여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굳이 밝히지 않겠다.

문제의 전원공급장치에 들어간 캐패시터 역시 제조사 표시도 없는 싸구려였다. 돈을 좀 아껴 볼 요량으로 다른 사람이 쓰다가 남은 물건을 넘겨받아서 썼었는데, 그 물건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메인보드와 전원 공급장치에는 어느 정도 돈을 들여야 정신 건강에 좋다’ 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돌이켜 보니 이런 소동이 벌어지기 얼마 전에도, H.264 동영상을 ATI의 AVIVO 가속으로 재생하다가 갑자기 다운되거나 강제 재부팅 되는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H.264 동영상 중에는 표준을 안 지킨 것도 많고, 다른 코덱과 충돌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 때문에 그래픽 카드나 그 드라이버를 의심했지, 전원 공급장치까지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10/29), 아키하바라에서 전원공급장치를 새로 조달해왔다. 이 나라는 특히 전원 공급장치나 각종 케이스의 가격이 높은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에서 나오는 전원 공급장치가 7천엔에서 만엔을 넘어간다. 필자가 사 온 제품의 가격은 3980엔인데,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도 들어오는 보통 수준의 제품인 듯 하다.


▲ 이번에 필자가 구입한 전원공급장치.

거처로 돌아와서, 메인보드까지 영향을 받지 않았길 바라며 전원을 넣어 보니 다행히 아무런 이상 없이 움직였다. 바이오스 설정이 초기화되어서 다시 설정한 것이 수고라면 수고랄까, 지금까지 여덟 시간 이상 PC를 켜 놓고 있는데 현재까지 이상은 없다. 이쯤 하면 안심해도 될 것 같지만, 앞으로 1주일 동안은 계속 PC를 켜 놓고 상태를 확인해 볼 생각이다.

※ 유명 제조사의 전원 공급장치라고 위에서 소개한 일이 안 벌어지라는 법은 없다. 5년 전, 모 편집부에서 CPU 벤치마크를 할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사용한 전원 공급장치는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제조사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워낙 소리없이 조용히 죽는(?) 바람에 무슨 영문인가 하고 뜯어봤더니, 일본 N사의 콘덴서 두 개가 파열 직전까지 부풀어 있었다. 샘플이라 눈물을 머금고 폐기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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