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산업군이 발전한다는 것은 꼭 그 산업만의 발전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의 산업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다른 산업과의 연계가 필수적이다. 이는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다른 사람과의 연계인 ‘사회’를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람이든 산업이든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조화를 이루었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이는 많은 산업에서 이미 증명되어 있다. 자동차 산업은 2만여 개의 부품과 산업이 결집된 산업이며, 정보화 사회라는 트렌드까지 만들어 낸 IT 역시 전자, 전기 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과 산업이 연계되어 있는 복합적인 산업이다. 그리고 이런 산업들은 혼자 발전하는 게 아니라, 연계된 산업들과 함께 발전해 왔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고, 발전에도 바람직한 발전이 있는가 하면 발전하지 말아야 할 분야가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IT의 발전은 문명에 긍정적인 영향도 많이 끼쳤지만, 발전하지 않아도 될 분야를 같이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런 예는 열 손가락에 세기엔 고민이 될 정도로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의 컴퓨터들에 없어서는 안될 ‘쿨러’이다.
트랜지스터의 발견은 진공관의 거대한 크기와 엄청난 열을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그 트랜지스터 또한 작은 공간에 만만치 않은 개수가 집적되면서, 지금은 방열판을 넘어서 별도의 쿨러 없이는 동작시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지금도 많은 연구실에서 발열이 적은, 별도의 쿨러가 필요없는 고성능의 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쿨러는 '온도'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 발열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이런 쿨러를 덮어 씌워 식히는 것이다.
최근의 컴퓨터들은 ‘발열과의 전쟁’ 이 진행 중이다. 블레이드 서버나 1U급 서버로 촘촘하게 쌓은 서버들의 발열 문제는 관리자들에 있어 가장 큰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쿨링을 위해 따로 써야 하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으며, 수많은 쿨링팬들이 돌아가면서 내는 소음도 관리자들의 근무 여건을 악화시키는 데 한 몫 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PC 또한 발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10여 년 전 프로세서에 처음 방열판이 장착될 때까지만 해도 사용자들은 프로세서가 내는 열이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펜티엄 프로세서를 지나면서 쿨러는 필수가 되었으며, 넷버스트 구조의 펜티엄 4에 이르러서는 쿨링을 위해 시스템 구조까지 새로 제안되었다.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더 큰 방열판과 더 빠른 팬을 가진 쿨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쿨러를 사용해 온도 문제는 확실히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고, 온도 문제를 해결한 대신, 쿨러가 내는 소음 문제는 사용자 입장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발열 문제의 ‘해결’은 소비자가 생각하는 것과 기업이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사용자에 있어 발열 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가능한 낮은 온도’ 지만, 기업이 생각하는 ‘해결’이란 ‘최대 부하 상황에서 보증온도 이내의 동작 보증’이다. 프로세서 업체의 쿨링 솔루션은 이런 원칙에 맞춰서 제공되며, 정확히 보증 온도까지의 쿨링만을 지원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컴퓨터에 있어, 쿨링은 ‘냉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쿨링은 ‘적정 온도의 유지’ 때문에 하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든 간에 온도가 달라지면 조금씩이라도 성질이 달라지고, 나노 영역에 접어든 부품들은 이에 더욱 민감하다. 온도가 바뀌면 전도와 저항 성질은 급격히 변화하고, 동작 온도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작동을 보증하지 못한다.
물론 많은 제조사들이 이런 불상사를 막고 사용 가능한 온도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반도체 도핑의 조성을 바꾸거나, 소재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으로 현재는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온도 정도는 동작을 보증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반도체가 동작할 수 있는 온도 범위는 대단히 좁고, 사용 가능한 범위 안의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것이 쿨러가 맡은 임무이다.
▲ 보기엔 못미더워도, 보증 조건에서 동작에 이상없다면 일단은 '좋은 쿨러'다.
하지만 막상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이 의미의 차이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보통 전자 제품의 동작 온도 기준은 상온에 맞춰져 있으며, 공냉 방식의 쿨러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주위 온도보다 온도를 낮출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좋은 쿨러는 ‘낮은 온도를 보여주는’ 쿨러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그리고 풀로드 상태에서 보증 온도 이내로 동작이 가능하다면 이는 목적에 잘 맞는 '좋은 쿨러'다.
이런 쿨러의 역할은 비단 컴퓨터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자동차의 냉각기만 해도, 엔진이 최적의 구동을 할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주 목적이지 엔진을 차갑게 식히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다. 컴퓨터에 있어서도 좋은 쿨러란, 온도를 낮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온도의 변화를 최소한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쿨러를 위한 소재의 선택은?
▲ 알루미늄은 가볍고 저렴하면서 적당한 열 성능을 보여준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쿨러는 금속재질의 쿨러다. 특히 가격 대비 효율이 좋고 만들기 편한 알루미늄 계열과, 전열성이 우수한 구리 계열이 많이 사용된다. 알루미늄과 구리는 서로 장단점이 있지만, 주위에서 흔하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금속재료들이므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사용된 쿨러와 방열판의 소재는 알루미늄이었다. 알루미늄은 가볍고 성형이 쉬우며, 다른 금속에 비해 열전도율이 좋고, 가격도 적절한 편이라 많이 사용되었다. 알루미늄의 구조적인 강도는 여기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데, 쿨러에 가해지는 힘이라 해 봐야 클립의 장력 정도와 자체 무게를 버틸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루미늄의 열전도율로는 점점 작아지면서도 많은 열을 내는 프로세서들에 맞출 수 있는 쿨러를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열전도율이 떨어지면 방열판의 크기와 열 배출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열원에서 열이 이동하는 속도가 열전도율이고, 열전도율이 떨어진다는 것은 쿨러에서 열원과 방열판 부의 온도차가 크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점은 당연히 쿨러 효율은 물론이고 순간적으로 큰 폭의 온도차를 보여주는 최근의 고성능 프로세서들과 맞추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런 한계는 방열판의 크기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특히 온도 변화가 급격한 최근의 하이엔드급이나 오버클럭된 프로세서들과의 조합에서 알루미늄은 물리적인 한계를 보이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그다지 열이 많지 않은 프로세서들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사용된다.
▲ 구리 소재는 여러모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구리 소재는 PC 기반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었다. 구리는 컴퓨터에서도 전기 전도재나 열전도재로 많이 쓰이고 있다. 구리의 열전도율은 알루미늄의 약 1.7배이며, 단순하게 생각하면 같은 단위부피당 효율에서 구리는 알루미늄에 비해 약 1.7배 이상 쿨러를 크게 만들 수 있고, 물론 그 이상으로 큰 면적과 높은 방열 성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구리를 사용할 때 꼭 생각해야 할 점이 있는데, 구리가 열전도율이 좋긴 하지만, 알루미늄에 비해 훨씬 무겁고, 표면 부식이 진행될 경우 쿨러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흔하므로 합금이나 표면 처리 또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덕분에 구리제 쿨러는 가격도 비싸거니와, 심한 경우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별도의 장착을 위한 도구를 필요로 하기도 하여 설치도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특히 순구리가 아니라 합금일 경우, 구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더라도 알루미늄 합금에 비해 열전도율 등의 특성에서 별 차이 없는 경우도 흔하다. 기본적인 성질은 당연히 합금보다는 순구리가 더 좋고, 합금을 사용하는 경우엔 이보다 주요 특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시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구리를 사용한’ 쿨러들은 재료의 순도 등을 표기하지 않고 있으니 이 효과는 소비자가 알 길이 없기도 하다. 큰 구리 쿨러가 구리 소재의 힘인지 크기의 힘인지 겉모습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 요즘 무거운 쿨러들은 별도의 지지대가 필수 부속품이다.
점점 무거워지는 쿨러의 무게는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무거운 쿨러가 그다지 기계적인 강도가 높지 않은 PCB에 매달려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컴퓨터의 PCB는 애초에 기계적인 강도를 거의 고려하지 않으므로, 무거운 쿨러를 장착하면 외부에서 작은 충격이 갈 경우에도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봉착한 덕분에, 최근에는 쿨러에 통구리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히트파이프 쿨러의 블록 부분에 한정적으로 구리를 사용하거나, 코어 부분의 열 전도를 위해 알루미늄 쿨러에 구리심을 박아 넣는 정도로 그 역할은 한정적이다. 알루미늄 쿨러에 구리심을 사용할 경우, 방열판 가장자리의 온도 차를 줄여 주고 방열 면적을 넓혀 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다소의 효율 향상이 있다.
▲ 꼭 컴퓨터의 쿨링에 공냉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공기의 흐름을 사용하는 공냉 방식의 쿨러 이외에도 물을 사용하는 수냉, 열전 현상(Thermoelectric effect)을 사용하는 펠티어 소자, 그리고 한계 상황을 볼 경우 주로 사용되는 드라이아이스나 액화질소 등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모두 치명적인 단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이 덕분에 흔히 사용되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사용해서는 안되는 방법이다.
파워유저들이 한 두 번은 거치는 수냉 방식은 물을 열전달 매체로 사용해, 열원에서 열을 받아온 다음 별도의 냉각장치를 통해 물을 냉각하여 온도를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PC에서도 일부 사용자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소음 면에서도 양호하고, 많은 열량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냉 방식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첫 번째로, 컴퓨터라는 물건은 물과 친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물이 새기라도 한다면 전체 시스템의 손상이 흔할 정도로 위험 부담이 큰 방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도성이 없는 물이나 다른 유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효율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물을 사용할 경우, 금속제 재킷의 부식 문제라는 단점이 있다. 표면처리를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구조의 재킷 속을 지나가면서 금속 재킷의 표면 부식은 이론적인 속도의 몇 배 이상으로 진행된다.
물이 계속 지나갈 경우 아무리 표면 처리를 잘 하더라도 부식은 진행되고, 부식된 부분에서 누수가 일어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번거롭지만 자주 육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사용이 지나치게 번거로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 펠티어 소자는 장단점이 너무 극명해서 잘 사용되지 않는다. (출처 : www.micropelt.com)
펠티어 소자를 사용하는 방법은 현재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펠티어 소자에 전기를 가할 경우 특정 면을 영하 이하의 온도로 냉각이 가능한데, 이 방법 또한 쉽게 낮은 온도를 얻을 수 있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먼저, 한쪽이 온도가 낮은 만큼, 반대편은 온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열은 시스템 내부 온도를 높이며, 결국 높은 내부 온도는 효율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펠티어 소자의 반대편에 또 쿨링을 해야 하는데, 이 쯤 되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나오는 경우도 흔하다. 프로세서가 내는 열보다 오히려 펠티어 소자가 내는 열이 더 많은 경우가 나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양면에서 만들어지는 극단적인 온도 차는 주위의 습기를 응축시키게 되고, 여기서 생긴 ‘물방울’은 메인보드의 부식과 심한 경우 물로 인한 합선까지도 일으킨다. 더구나 펠티어 소자가 동작하기 위해 필요한 만만찮은 전력소모와, 비교적 떨어지는 에너지 효율은 파워서플라이와 전기요금에도 부담을 가중시킨다.
극한 오버클럭에서 종종 사용되는 액화질소 등의 방법은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대단히 위험한 방법이다. 주위의 습기가 모두 응축되므로 이에 대한 대비는 필수적이며, 극한 온도에서는 프로세서나 메인보드 모두 정상 동작을 보증하지 않는다.
이런 위험이 이득으로 작용하는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사용자의 몫이다. 이런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막연히 좋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며, 일반적으로 이런 방법을 한번이라도 사용한 메인보드는 캐패시터 등에 문제가 생기므로 폐기할 수밖에 없다.
히트파이프 쿨러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 히트파이프의 작동 원리 (출처 : china-heatpipe.net)
최근 하이엔드급 고성능 쿨러는 대부분 히트파이프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기존의 통 금속을 성형하는 방법이 아닌, 고전도성 물질을 사용한 ‘히트파이프’를 사용한 쿨러들은 독특한 외관들과 대형 방열판들을 구비하고 비교적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히트파이프는 밀폐용기 내부의 열전달을 담당하는 유체가 연속적으로 기체-액체간의 상변화 과정을 통하여 파이프의 양단 사이에 열을 전달하는 장치로, 상변화에 생기는 잠열을 이용하여 열을 이동시킴으로써 높은 효율을 얻어낸다. 작동에 별도의 동력이 필요 없으며, 액체의 순환은 중력, 모세관력, 구심력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이 모두를 통칭하여 ‘히트파이프’라 부른다.
히트파이프는 원래 많은 열을 빠르게 전달해야 하는 산업체 플랜트 등에서 사용되었지만, 낮은 온도의 전기/전자장비의 냉각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는 열원에 직접적으로 냉각이 불가능한 경우, 열원에서 열을 냉각하기 쉬운 위치로 이동시키는 데에 히트파이프만큼 편리한 솔루션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PC 레벨에서 히트파이프를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노트북 컴퓨터들이다. 노트북 컴퓨터의 쿨링 솔루션은 거의 예외 없이 히트파이프를 사용해 가장자리에 집중적으로 방열판과 쿨링팬을 배치하고 있다.
▲ 히트파이프를 사용한 쿨러의 효율성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에는 데스크톱이나 서버로 사용하는 시스템에도 히트파이프를 사용한 쿨러가 종종 보인다. 대체로 고성능을 자랑하는 쿨러들에 히트파이프가 사용되며, 이런 점에서 ‘히트파이프를 사용한 쿨러는 고성능’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히트파이프를 사용한 쿨러가 성능이 좋은 건 히트파이프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히트파이프는 단순히 열을 이동하는 데 사용하는 고효율의 통로일 뿐이다. 단순한 열의 이동 경로일 뿐이므로 실제 방열 성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실제 제품들의 성능은 분명 기존의 금속 성형 쿨러와 차이를 보이는데, 그 이유는 방열판의 효율성에서 찾아야 한다.
히트파이프를 사용해 열을 이동시킬 경우, 열원의 반대편에서는 거의 손실없이 이동한 열의 방출이 이루어진다. 이 열이 히트파이프를 빠져 나와 방열 핀들로 전달되는데, 이 방열 핀들은 히트파이프에서 거의 손실이 없이 열이 이동했으므로 열원에 바로 연결된 방열판처럼 움직이며, 히트파이프의 배치에 따라 방열 핀들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히트파이프는 엄밀히 말해 화학 반응의 ‘촉매’와 비슷하다.
▲ 패널들 중 상당수는 장식이 되어 버린다.
히트파이프를 사용한 쿨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각 부품들의 ‘결합 상태’와 ‘배치’다. 히트파이프는 열을 옮겨 주기만 할 뿐이므로, 쿨러의 구조에 따라, 그리고 주위 환경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로 변하게 된다.
또한 파이프와 각 구조물들이 얼마나 잘 붙어 있느냐에 따라 열전달 성능이 차이가 나게 된다. 덕분에 히트파이프 쿨러의 경우 이 결합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충격과 부식 등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이 제조사의 기술력으로 부각되게 된다.
쿨러의 구조 또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냉각 효율 면에서 생각할 때, 히트파이프에서 열의 흡수와 방출은 히트파이프의 일부 영역에서만 일어난다. 이를 무시하고 파이프의 절반 이상에 방열 패널을 연결해 봐야 냉각 성능은 크게 좋아지지 않는다. 되려 전체 효율은 더 떨어지게 된다. 모양은 든든해 보이겠지만, 그 중 많은 수의 패널은 단순한 장식용으로 전락할 뿐이다.
또한 히트파이프가 쓰이는 가장 큰 목적은 ‘열의 효율적인 이동’ 이다. 하지만 현재 많은 쿨러들이 단순히 히트파이프를 ‘더 큰 방열판을 장착할 수 있는 구조물’ 정도로 본다. 하지만 히트파이프가 열 손실이 적다는 것은 그 만큼 주위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극단적으로 주위 환경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은 히트파이프 쿨러의 사용은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내재된 속성이 상당히 복잡한 히트파이프 그 자체의 효율은 히트파이프 양 쪽의 온도차가 클수록 높아진다. 물론 히트파이프 내부의 소재에 따라 사용이 가능한 온도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그 범위 이내에서는 온도차가 클수록 효율은 높아진다. 이는 온도 전달에 상변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히트파이프를 너무 다수로 배치할 경우, 히트파이프가 처리 가능한 열용량은 프로세서가 낼 수 있는 열량을 크게 넘고, 이 경우 개별 히트파이프의 효율과 전체적인 쿨러의 효율까지도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효율이 떨어진다고 절대적인 냉각 성능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서 하위 모델과 뒤집히기도 하는 성능이라면 속이 쓰리기 마련이다.
효율적인 쿨링을 위해 신경써야 할 점
▲ 전형적인 ATX 형태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공기 흐름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열역학의 기본이자, 물리학의 기본 법칙 중 하나는 ‘한 계 내에서 에너지는 소실되지 않는다’ 이다. 컴퓨터에서 나는 열은 전기 에너지의 다른 형태이지만,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없는 형태의 에너지일 뿐이다. 이 열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에너지원을 더 투입한다는 것 자체부터 일단 아이러니할 뿐이지만, 최근의 컴퓨터들은 정상적인 사용을 위해 별도의 에너지 투입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별도의 전기 에너지 투입이 없이 이런 일련의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이는 최근의 컴퓨터 부품들이 더 작아지는 만큼 더 어려워졌다. 최근의 그린IT 추세가 이런 추세에 반기를 들기는 했지만, 고성능 제품들에서는 아직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제품들에서는 엄밀히 말해 에너지 효율은 쿨링에 들어가는 에너지 효율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컴퓨터를 냉각시킬 때, 최대한 적으로 부성하는 것은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쿨링을 하기 위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공기가 가진 기본적인 대류 현상의 특징이다. 공기는 온도가 높아지면 부피가 팽창하고, 밀도가 낮아진다. 흔히 말하는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고, 이를 잘 활용하면 비교적 뚜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주로 사용하는 ATX 방식의 구조와 타워 형태의 케이스는 이런 기본 원칙을 잘 반영하고 있다. 파워 서플라이의 배출 구조부터 시작해서 주된 열원인 프로세서의 위치와 각종 확장 카드들의 배치 등은 표준 구조의 배치일 경우, 자연스러운 공기 흐름을 유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특성은 과거 ATX 규격이 처음 보급될 당시에도 부각된 바 있다.
지금은 표준으로 정착한 ATX 방식이지만, 나름대로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케이스 시장에서 가장 고민꺼리가 되는 부분은 이 공기 흐름을 어떻게 유도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많은 케이스들에서 전, 후면 팬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몇몇 팬들은 초대형 측면 팬까지 지원하고 있지만, 이들의 사용이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이 문제는 일단, 시스템의 주요 열원에 어떠한 형태의 쿨러를 사용하는가와, 하드 디스크 등 각종 부품의 위치에 따라 생각해 봐야 한다. 쿨러의 형태와 열량에 따라 열의 이동 통로는 달라지고, 케이스의 팬들은 이에 맞춰서 구성하는 게 옳다. 이에 맞추지 않는다면 수많은 팬 중 대다수는 아무 효과 없이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다.
최근의 PC에서 별도의 쿨러가 필요한 부분은 세 군데이다. 프로세서, 메인보드 칩셋, 그리고 그래픽 카드가 별도의 방열 대책이 필요할 정도의 발열을 보이는데, 효율적인 쿨링을 위해서는 이 세 가지의 쿨링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를 고려해서, 공기의 흐름을 생각해 팬을 배치하는 게 에너지 효율적인 쿨링의 필요 조건이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전면 흡기 팬 하나, 후면 배기 팬 하나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많은 케이스에서 이 방법을 지원하며, 대부분의 시스템에서 평균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의 케이스들은 측면 패널에 에어가이드 이외에도 별도의 통풍을 위한 홀이 구비되어 있으며, 이와 조합될 경우 전면 팬의 효과는 일반적으로 케이스 전면에 배치되는 하드 디스크의 쿨링에 사용되는 정도로 줄어들기도 한다.
프로세서에 일반적인 형태의 쿨러를 사용한다면, 배기 방향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다. 이 경우는 프로세서 뿐만 아니라 메모리와 칩셋 등 주위까지 식혀 주므로 레퍼런스 형태로 이해된다. 단지, 케이스에 장착된 에어 가이드를 덧붙여 사용할 경우에는 프로세서의 쿨링 효율과 함께 시스템 전체의 쿨링 효율을 높일 수 있으니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면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 타워형 쿨러는 배기 팬과의 관계를 잘 맞춰 주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프로세서에 히트파이프를 사용한 타워형 쿨러를 사용한다면 배기 팬의 방향에 각별히 신경을 써 주는 것이 좋다. 될 수 있으면 쿨러의 팬과 직선 방향으로 배기 방향을 배치하는 것이 좋으며, 회전수와 풍량을 잘 고려해야 소음 등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배기 방향 또한 파워 서플라이의 배기 팬 방향과 함께 두 방향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효과가 의외로 크게 반감된다. 또한 배기 팬의 풍량이 너무 지나칠 경우에도 효과는 줄어든다.
최근 일부 케이스에서 볼 수 있는 초대형 측면 흡기 팬의 경우, 시스템 내부를 직접 쿨링이 가능한 만큼 효과도 즉시 나타난다. 하지만 이 경우 일반적으로 고려되는 공기 흐름을 강제적으로 깨는 만큼, 측면 흡기 팬 이외의 모든 팬의 효력은 사라진다. 후면 배기팬은 어떤 형태로든 방해가 될 뿐이며, 전면 팬 또한 대부분의 경우 없어도 되는 수준으로 변한다. 이런 상태에서 별도의 팬을 추가로 더 달아서 구동하는 것은 사실상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이 외에도 기본적으로 흡기구를 막는 먼지를 주기적으로 제거해 주거나, 지나치게 난잡한 선 정리를 해 주는 것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 선 정리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깔끔하게 최단 거리로 정리하는 것보다는 케이스의 옆면으로 적당히 밀어 놓는 게 더 편리하며 공기 흐름에도 큰 차이가 없다. 공기의 흐름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을 적당히 피해 놓는 것이 목적에 맞는 선 정리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간혹, 겨울철에 바깥 날씨가 차면 쿨링에 도움이 된다고 컴퓨터를 밖에 내어 놓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하다. 컴퓨터는 단순히 반도체로만 이루어진 물건이 아니고, 겨울철에 밖에 내어 놓을 경우 창에 물방울이 맺히듯이 컴퓨터 안에서도 몇몇 부분에서 물방울이 맺히고,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될 수 있으면 실내 온도 수준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또한, 산업용으로 설계된 보드가 아닌 경우 일반적으로 0도 이하의 구동에서는 문제가 생길 소지를 언제나 가지고 있다. 문제는 보통 캐패시터에서 일어나는데, 캐패시터의 일반적인 구동 온도는 0도에서 100도 근방 정도까지이다. 이 온도 영역을 벗어날 경우 캐패시터의 성질은 크게 변하게 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산업용 영역에 사용되는 보드가 비싼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
쿨링에도 효율이 필요한 시점
컴퓨터의 발열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사용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전기 요금의 일부이다. 이런 발열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돈을 들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분명 달갑지 않은 일이다. 최근의 그린IT 추세는 이런 입장을 반영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발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는 대단히 바람직한 추세라고 할 만하다.
발열이 줄어들면 쿨링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줄어들고, 에너지 효율이 높아지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발열이 줄어든다고 해도 사용자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거나 지나친 쿨링으로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이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형태의 비효율성은 분명 현재의 친환경과 그린IT라는 추세를 역행하는 것이며, 지양해야 할 사용 형태이다.
한편, 컴퓨터의 온도 또한 적당히 체크하는 것은 분명 안정적인 사용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이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에너지의 낭비이며, 사람이 편하고자 사용하는 컴퓨터가 오히려 사람을 번거롭게 만들어 주객이 뒤바뀌는 입장이 나오는 일도 벌어진다. 에너지를 총량으로 본다면, 전기만 에너지가 아니라, 컴퓨터에 신경을 쓰는 사람도 괜스레 에너지를 소모하는 꼴이 된다.
이제 쿨링에도 에너지 효율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이 ‘에너지 효율’이란 단순히 전기 에너지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전기 에너지보다도 중요할 사용자의 정신적인 에너지나, 사용자의 시간의 가치, 건강의 중요성 등 다양한 ‘에너지 효율’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IT가 단순히 ‘전기 절약’의 차원이 아닌 이유도 컴퓨터가 단지 ‘전기’만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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