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팬에서는 27일에 '극과 극' 컨셉은 아니었지만, 같은 칩셋을 쓴 매우 상이한 두 가지 메인보드의 리뷰를 공개했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또 같은 칩셋을 쓴 다른 클래스의 메인보드의 리뷰를 같은 날 공개하는 경우는 업계에서 매우 드문 편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꽤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는 관계로 한꺼번에 다뤄 보았다.
무엇이 '의미심장'하냐면, 이제 완전히 이분화된 작금의 시장상황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서다. 다들 알다시피, 중급형 시장이 힘을 못 쓰는 형국이다. 지금 시장에 남아 있는 것은 '중고급형'과 '중보급형'. 말장난 같아 보이나, 실제 상황이 그러하다. 환율이 출렁거리는 상황이 거의 반년여 동안 이어지다 보니, 비싸거나 말거나 시장이 형성되는 고급형과 무조건 싸고 봐야하는 보급형만 살아남은 꼴이다.
중급형이 힘을 못쓰는 이유는 앞서 단락에서 있듯, '가격'이 포인트다. 고급형과 보급형은 소위 '환헷지'가 '속 편하기' 때문에 유통사에서 전략기획을 짤 때 관리가 쉽다. 반면 중급형은 출렁이는 폭에 쉽사리 휩쓸리다보니, 잘못 수입하면 그대로 피해를 뒤집어 쓰고 유통 또는 사업을 접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연유로 현재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곳은 시장을 양분해 관리하는 형편이다.
▲ EX58-Extreme(좌측) & EX58-UD3R(우측)
그 대표적인 경우를 우리는 기가바이트의 메인보드 유통전략을 보면서 엿볼 수 있다. 이번에 리뷰를 공개한 두 메인보드는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X58 칩셋 기반 기가바이트 메인보드 중에서 라인업이 끝에서 끝이다. EX58-Extreme 메인보드는 55만원대, EX58-UD3R 메인보드는 35만원대. 20만원 차이면 거의 메모리가 한 묶음으로 오락가락할 차이다.
그러나 시장은 이러한 양대 거두가 쌍끌이로 끌고가는 형편이다. 다른 메인보드가 중간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경제위기에 환율불안까지 겹친 상황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뻔한 감이 없지 않다. 일단 소비자 입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름 너머 저멀리에 있는 것'과 '손 끝에 닿는 것'이다. 묘하다고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격차가 큰, 그런 상황이 그려진다.
똑같은 ATX 폼팩터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뻔한 공간에 한데 모인 요소들이 같을 수는 없다. 20만원이라는 가격 차이를 소비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정성이 필요하다. 기가바이트가 내놓은 두 메인보드를 한데 붙여 보다보면, 당장 눈에 보이는 플라스틱 재질 요소들은 눈에 보기에는 뻔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부품 외에 라이센스까지 엮이면 더욱 더.
* 참고기사
[리뷰] 기가바이트 EX58-Extreme 메인보드
http://benchmark.tistory.com/138
[리뷰] 기가바이트 EX58-UD3R 메인보드
http://benchmark.tistory.com/139
▲ EX58-Extreme(상단) & EX58-UD3R(하단). IEEE-1394냐 LAN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격차이가 크게 벌어지면 제품 자체가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메인보드의 원초적인 기능 그 자체는 칩셋에서 결판을 내 버려서, 기능적인 부분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서로 별 차이가 없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백패널'이다. 백패널을 보면 랜 포트와 IEEE-1394 포트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는 그런 모양새다.
만약 백패널 하나만 놓고 본다면 고급형과 보급형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야말로 '기능'만 놓고 본다면 보급형이 하극상이라면 하극상도 해낸다. 우리가 농담삼아 이야기하는 '연구소' 메인보드를 곰곰히 생각해 보자. 칩셋이 제공하는 기본 기능과 PHY 등을 활용한 글자 그대로 '접붙여진' 기능들이 모이면 어떤 물건이 되는지.
과거에 비싼 메인보드는 '기능이 많다'는 이유로 인정받아 왔지만, 요즘은 그게 틀린 말이 되어 버렸다. 프로세서 제조사가 제공하는 레퍼런스 가이드에 맞춰 일단 모두 다 기능 하나는 맞춰 가는 경향을 보이는데다, 과거처럼 메인보드 제조사가 자기들이 장난 삼아서 만든 기능이나 액세사리를 더해 파는 경우가 현저히 줄었다. 딱히 게이머 컨셉 아니라면 예전처럼 재미있는 제품은 못 보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데에는 우선 메인보드 제조사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얼마전 천하의 ABIT가 문을 닫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메인보드 업계도 특허 취득과 구매가 쉬운 대기업 중심의 질서로 재편되었다. 그 옛날처럼 취향 따라 세컨티어, 서드티어 제품을 구하는 건 참으로 어려워졌다. 하드웨어 트위커들이 '로망'을 추구하던 그 나날들은 이제 추억으로나 회상될 뿐이다.
▲ 애드온 히트싱크가 있는 EX58-Extreme(상단)과 그냥 무난한 EX58-UD3R(하단)
지금은 대형 제조사에서 소위 '타임 투 마켓'으로 특정 시기에 물건을 대량으로 밀어내는 게 그 '기업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레이어 레벨에서 설계를 완전히 새로 해서 피어처를 추가하는 형태로 제품군을 기획하는 건 비용 이전에 타이밍 차원에서 어려워졌다. 특히 플래그쉽 모델은 수익은 좋아도, 수량이 적어 매출 자체는 적은 편이어서 '배팅' 걸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던 '풋 프린트' 자체가 다른 메인보드는 요즘 보기 어렵다. 최상위 플래그쉽 모델 혼자 조금 다르고, 세컨 레벨부터 엔트리 레벨까지는 같은 풋 프린트에 부품만 있고 없고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라인업을 전개한 기업들이 현재의 강자들이 되었다. 생산성과 경쟁력에 보탬이 되는 건 사실인데, 사적으로 아쉬움은 큰 부분이다.
이번에 살펴본 EX58-Extreme 메인보드와 EX58-UD3R 메인보드의 차이를 살핀다면 우선 전자가 SLI, 크로스파이어 라이센스를 따기 위한 별도의 검증과정과 설계가 적용되었다는 점이 눈에 안 보이게 묻혀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것들, 즉 슬롯 배치나 라이센스 표시 정도는 크게 눈에 띄는 것이 아니다. 정말 눈에 띄는 건 참으로 거대한 히트싱크다. '애드온' 타입이 제품의 외관을 장식한 것이다.
문제는 너무 거대한 히트싱크가 외관을 장식하다 보니, 소비자들은 그게 다인 줄 착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업계 일을 여러 해 동안 보다보면, 실상 원가 구조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은 애드온으로 붙는 부품들의 소재 원가 보다는 제품을 인증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들이다. 특히 어지간한 기능들은 다 특허로 보호받고 있어, 이를 소비자에게 공급하고자 한다면 라이센스 획득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
눈에 보이기로는 독특한 레이아웃, 재미있는 프로모션, 푸짐한 번들 등이 제품의 싸고 비싸고를 구분하는 요소로 여겨진다. 이런 부가적인 요소로도 제품이 비싸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제품의 가격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특허, 라이센스로 옮겨가고 있다. 지금은 아직 그 정도가 미미하지만, '퀄컴'의 사례에서 이미 정형화된 그런 비즈니스가 메인보드까지 침식해 들어오고 있다.
▲ '돌비' 인증까지 더해 한층 더 푸짐한 EX58-Extreme(상단)과 무탈한 EX58-UD3R(하단).
메인보드 시장은 싸구려 제품, 아이디어 상품으로 버티는 업체들이 견딜 수 있는 구조가 아니게 되었다. 2007년 정도가 그런 재미있는 업체들이 아옹다옹하던 마지막 해였던 것 같다. 이제는 싼 제품은 비싼 제품을 차별화시키는 밑천이 되면서, 동시에 비싼 제품이 패키지 단품으로 유통될 수 있는 여건을 다지는 다중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또 이러한 구조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를 못 만들어내는 기업은 비즈니스를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요즘이다.
소비자들에게 컴퓨터가 과거처럼 지적 계층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기 보다, 텔레비전이나 핸드폰과 같은 생필품 수준으로 오르면서 변화가 일어난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다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다. 사실 메인보드는 컴퓨터를 이루는 부품 하나의 불과하다면 불과한 것인데, 이 역시 세상이 바뀐 만큼 알게 모르게 바뀌었다. 흔히 세간에서 언급되는 '양극화'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PC 케이스 안에서도 은근슬쩍 이루어져 이제는 완전히 그 룰로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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